독도연대기

독도연대기
한국의 울릉도·독도 인지와 편입사 일본의 울릉도·독도 인지와 명칭
지증왕 13년 이사부 우산국 복속 512
우산국에서 고려에 공물을 바침 930
1004 고려인 11명이 이나바(지금의 돗토리 현 동부 지역)에 표류한 것을 계기로 울릉도가 일본에서 우르마 섬으로 알려짐.
김인우를 ‘무릉등처 안무사(武陵等處 安撫使)’에 임명, 울릉도 관리 1416
『세종실록』「지리지」편찬,
『세종실록』「지리지」편찬에 우산(于山)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고,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함.
1454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우산도, 울릉도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고 함. 부속도서인 「팔도총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표현됨. 1531
1667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에 다케시마(竹島,울릉도), 마쓰시마(松島,독도)를 조선 영토로 기록함.
안용복과 박어둔이 울릉도에서 일본 요나고 주민에게 납치되어 일본으로 간 것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간에 울릉도와 독도를 두고 영유권 분쟁 발생함. 1693
삼척영장 장한상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조사 후 삼척으로 귀환, 조선정부는 정기적으로 울릉도를 수토 하기로 결정
※울릉 수토제도(1697~1894): 안용복 사건 이후 3년에 한 차례씩 관원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살펴보도록 한 제도
1694
1696 에도 막부,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확인함.
5월, 안용복 일행이 다시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子山島라고 기록됨)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 그 증거로「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를 제시함. 1696
조선정부가 울릉도에 정기적으로 수토관을 보내 조사하고 관리하기로 결정함. 1697
정상기「동국지도(東國地圖)」제작, 울릉도 동쪽에 우산도 표현. 1740~
1750
「동국문헌비고」,「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독도)라고 하였다”고 기록함. 1770
「만기요람」,「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독도)라고 하였다”고 기록함 1808
1870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외무성 관료가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가 조선 영토가된 경위에 대해 보고함.
1877 일본 태정관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가 ‘다케시마 외 일도(竹島外一島:울릉도 외 독도)가 일본령이 아님을 명심하라는 지령을 내림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도항 조사를 위해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함. 1882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반포, 제2조에 울도군(蔚島郡)의 관할구역으로 울릉전도, 죽도(竹島)와 함께 석도(石島, 독도)를 규정함. 1900
1905 2월, 일본 각의는 독도를 ‘다케시마’로 명명하여 시마네현의 오키도사 소관으로 한다고 결정. 그 해 11월 러·일 전쟁에서 승리 후 한국의 외교권 박탈(을사조약)
울릉군사 심흥택이 ‘본군 소속 독도을 일본이 편입’했다고 내부(內部)에 보고함. 이 보고를 받은 참정대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더 조사하라”는 지령을 내림. 1906
「증보문헌비고」, “우산도·울릉도,,,두 섬으로 하나가 바로 우산(于山)이다. 속(續) 지금은 울도군이 되었다”고 기록함. 1908